일기2011. 11. 2. 22:51
LG전자 CTO부문에서 안드로이드 개발 인턴연구원을 하고 있는 나에게 벤처회사의 대표가 오퍼를 보냈다. 소셜게임 회사를 세우려고 하는데 창업멤버로 와달라는 것이었다. 20대에 한번쯤은 창업을 해보자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오퍼를 수락했다. 그렇게 스타트업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성공을 했으면 지금의 글이 더 멋져 보일텐데 아쉽게도 회사는 매각 수순을 밟고 있다. 그렇다, 창업이 실패한 것이다. 망했으면서도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나의 화려했고 열정적인 기간들을 곱씹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제 이야기를 풀어 보려고 한다.

회사 초기에 공격적인 채용을 하며 멤버를 늘려갔던 방식이 잘못된 징조를 보인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이다. 하지만 깨닫기 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싼맛에 대학생을 마구 채용하던 그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나 역시 대학생이었고 뜻있는 대학생들이 꿈을 이뤄가는 과정을 보았기에 나서서 반대할 수 없었다. 하지만 게임업계에 대한 경험 뿐 아니라 대규모 프로젝트에 대한 경험이 없는 너무 많은 멤버들이 팀을 이루었기 때문에 의사결정이 잘못되거나 지연된건 결과적으로 보면 안타까운 사실이다. 어느덧 우리는 경험이 쌓이고 몇번의 실패도 겪으면서 매우 단단한 팀으로 변해갔다. 이 과정에서 절반 이상의 팀원들이 떨어져 나갔다. 기름기도 빼고 단단한 근육도 만들었던 우리는 자부심을 가지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임하였다. 이 프로젝트가 우리회사의 마지막 프로젝트인 드림밴드이다.

우리팀의 출발은 매우 좋았다. 나와 함께 서버개발을 하던 친구는 학교 컴퓨터 동아리 동기였고, 클라이언트에서 서버와의 통신을 담당하던 친구는 나와 개발철학이 비슷했으며 알고리즘에 능한 개발자였다. 뿐만 아니라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 간, 서버와 기획자 간 소통도 잘 되었다. 더구나 레드마인을 통해 프로젝트 및 버그를 관리하며 스크럼을 채용해서 소통의 효율을 극대화 하였다. 서버사이드 개발 프로세스 역시 매우 좋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뜻이 통하여 애자일 프로세스를 최대한 반영하기로 했다. 오픈버전을 기준으로 약 450여가지의 테스트코드를 작성했고 이는 리팩터링 또는 요구사항 변경에 대한 작업시간을 대폭 줄여주었다. 후에 치명적인 버그를 하루에 한개씩 잡아내는데 가장 큰 공헌을 하였다. 그리고 지속적 통합을 위해 일일빌드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했지만 원클릭으로 빌드를 해주는 스크립트를 파이썬으로 작성하였다. 이로 인해 배포에 걸리는 시간을 많이 단축시켰다. 이런 경험을 겪고 나니 애자일 에반젤리스트가 되어 사람들에게 경험을 공유하게 되었다.

하지만 좋았던건 출발뿐이었다. 약 1년여의 개발기간을 거치면서 탄탄한 조직력도 서서히 와해되고 있었다. 스크럼 마스터와 프로덕트 매니저를 동일한 인물이 맡으면서 대표이사와 투자자로부터 팀원을 보호하지 못했던 것이다. 우리 프로젝트의 일정관리에 개발자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매번 촉박한 일정으로 개발팀의 피로는 쌓여가고 있었던 반면에 투자자의 재촉은 늘어만 갔다. 그러면서 스크럼의 본질은 조직력과 함께 서서히 내리막을 걷고 있었다. 게임 오픈을 목전에 두던 어느날 회사 지분의 분배 절차가 이루어 졌다. 그 이후 우리회사는 나를 비롯해 회사의 지분을 가진 멤버들과 가지지 못한 멤버들로 나뉘었다. 사실 지분을 받는 자리에서 난 너무 불편했다. 왜냐하면 마치 팀이 두개로 쪼개지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기여도가 낮다고 생각하는 멤버들도 조금의 지분을 챙겨주는게 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이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생긴 오해는 결국 팀의 균열에 시발점이 되었다. 

게임을 오픈하면서 늘어나는 유저와 함께 나의 개발 의지는 상실되고 있었다. 프로젝트를 하면서 쌓인 피로나 긴장들이 한꺼번에 방출되면서 건강에 적신호가 왔기 때문이다. 어차피 졸업을 위해 학교로 돌아가야 했기 때문에 예정된 날짜보다 퇴사 시기를 조금 앞당겼다. 네이트 해킹 사태로 인해 플랫폼 자체에 유저들이 줄어들었고, 나를 비롯한 각 분야의 핵심 멤버들이 회사를 떠나게 되면서 우리는 그렇게 끝나버렸다. 막상 회사를 떠난다고 생각하니 너무 아쉬웠고, 그동안의 나날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떠나는 날, 남아 있는 멤버들에게 미안함을 보였지만 멤버들은 나에게 회사에서 가장 고생하고 실패를 많이 겪은 사람인데 너무 미안해 하지 말라는 말에 너무 큰 위로가 되었다.

사실 회사에서 보낸 처음 절반의 시간동안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회사에서 포기하거나 팀원을 잘못 만나서 멈추었던게 여러개 있었다. 이런 이유로 개발 프로세스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갖게 되었고 얻은 부분도 많았기에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런 이유로 드림밴드 프로젝트에 너무 열과 성을 다했던게 나를 지치게 한 가장큰 이유였다. 성공에 목이 말랐던 게다.

더 나은 조직이 되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에 대한 고민을 우리회사에 빗대어 생각을 해봤다. 이에 대한 내 생각을 다음과 같다. 우선 대표이사는 투자자 유치뿐만 아니라 조직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경영지원 또는 인사팀의 부재가 아쉬웠다. 어떤 멤버가 문제를 일으키는지, 어떤 멤버가 무슨일로 힘들어 하는지 등에 대한 관심을 갖고 이를 해결해 주어야 조직이 잘 굴러간다고 생각한다. 미꾸라지 한마리 잘못 들어와서 팀을 망쳐놓은 경우를 두번이나 경험했기 때문에 너무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프로그래머들은 문서작성에 인색하지 말아야 한다. 나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거의 문서작성을 하지 않았고 중요하게 생각치 않았다. 내 경우에는 기획자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문서를 작성했지만 테크니컬 라이팅에 대한 지식의 부족으로 힘들었다. 아티스트의 경우 보여지는 그림에만 집착하는 등 자신의 결과물을 순수 미술로만 표현하려고 하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상업분야에 뛰어들었다면 그 분야에 대한 프로세스를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팀원들은 대체로 잘 해주었지만 내가 바라는 기준치가 높았을지도 모른다. 기획자는 개발 프로세스에 대해 관심을 더 가져야 하며 팀원들에게 소통의 창구로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창업이라는게 만만한게 아니었다. 벤처에 들어오기 전까지 창업을 너무 물렁하게 봤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볼 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이제 막 창업을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꼭 한번 봤으면 한다. 스티브 잡스가 남긴 말은 많은 IT업계 또는 유사업계 사람들에게 창업에 대한 기폭제가 되었다. 문제는 IT 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데 정작 본인들은 잘 모르는데에 있다. 홈페이지 하나 만들어 본적도 없고 갑으로서 을에게 갑질만 해대던 그런 사람들이 모여서 정작 개발팀도 없이 창업을 하려고 하기도 한다. 그리고는 개발팀은 외주로 돌리면 된다고 헛소리를 해대고 있다. 우린 어차피 같은 사람이기에 생각의 범위는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걸 간과하고 그저 우리만의 좋은 아이템이 있다고 어떻게든 빨리 만들어서 시장에 던지려는 사람들은 정말 바보이다. 중요한건 표현력이라는 걸 모른다. 얼마나 빨리 시장에 내놓느냐가 중요한만큼 얼마나 빨리 시장의 반응에 대응하느냐도 중요한데 외주로는 민첩한 대응이 힘들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IT에서 굴러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 뻘짓을 하는거다. 나 역시 이런 비슷한 사람들을 만났었고 말이 통하지 않아서 팀을 나왔다. 결국 그들은 개발자가 없어서 서비스를 만들 수 없었다. 그들 역시 회의 중에 개발을 외주로 돌리자는 이야기 까지 했던 그런 사람들이다.

내가 만약 한번 더 창업을 하게 된다면 큰 회사에서 좀 더 경험을 하고 뜻이 맞는 좋은 파트너들을 만날 수 있는 그런 시기에 할 생각이다. 파트너들이 적으면 그만큼의 규모로 커버 가능한 서비스를 만들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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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준피